[한경·네이버 FARM] 희귀식물 없는 식물원… 꽃으로 관람객 20만명 끌어모으는 아산 꽃 농부

입력 2017-10-12 16:03   수정 2017-10-12 16:25

2015년 세계꽃식물원 리모델링 현장. 식물원 직원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피라미드 모양의 커다란 구조물을 두고서다. 이 피라미드는 예전에 했던 국화전시회를 위해 남기중 식물원장이 직접 제작한 것. 직원들은 대부분 버리자고 했다. 쓸모가 없는데 너무 거대하다는 이유였다. 피라미드를 만든 남 원장은 아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원래 피라미드 가운데로는 좋은 기운이 모인다는데…”

네덜란드에서 수입한 구근을 담았던 상자들, 비료가 실렸던 드럼통, 공사 현장에서 주워왔다는 컨테이너… 식물원엔 이런 것들이 많았다. 딱히 쓸모는 없지만 남 원장이 버리지 않고 지난 12년간 모아둔 것들이다. 리모델링을 맡은 아크166은 이 ‘원장의 보물들’을 그대로 살리기로 했다.

“한 공간에서 그 공간보다 사람이 먼저 느껴지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하는 걸까요. 투박했지만, 그 투박함이 오히려 식물원의 역사를, 또 그걸 일궈온 남 원장의 역사를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었습니다.”(아크166 관계자)

◆꽃농사 짓는 식물원

충남 아산 세계꽃식물원은 1년 내내 꽃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논밭 위에 세워진 유리 온실에 3000여종의 꽃이 자란다. 아산지역 화훼 농민들이 힘을 합쳐 2004년 문을 열었다. 5000평 규모의 식물원은 화려한 정원이라기보다는 꽃이라는 농산물 전시장에 가깝다.

식물원 교육센터의 의자는 꽃 구근을 담았던 상자, 로비를 비추는 조명 재료는 화분 받침이다. 공사 현장에서 가져온 컨테이너 박스로는 아예 매표소를 만들었다. 남기중 원장이 직접 제작한 피라미드는 식물원의 시그널 타워로 변신했다. 버려야 할 물건들이 식물원을 구성하는 소재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 식물원엔 희귀 식물이 별로 없다. 정원이나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꽃들이 대다수다. 화분이나 장식도 소박하다. 튤립 화분은 못 쓰는 우유 상자를 쌓아 올렸다. 어떤 꽃은 아예 폐타이어 안에 심었다. 남 원장이 이것저것 주워다 직접 만든 것이다.

그런데도 매년 15만~20만명이 이 식물원을 찾는다. 재방문율도 높다. 조금 투박하고, 그저 툭 놓인 것 같지만 또 그런 자연스러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식물원과 남 원장에게 환호한다. 전시 온실 바로 옆엔 아산아름다운정원영농조합법인의 재배 온실이 있다. 지역 농민들이 20여년간 꽃을 직접 키워온 곳이다.

◆꽃에 미친 아버지, 남기중 식물원장

남 원장은 꽃에 미친 남자다. 건국대 원예학과를 나와 종묘회사에서 꽃 수출 일을 했다. 1986년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화훼붐이 일자 직접 농사에 뛰어들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성화봉송로 주변에 심을 대규모 국화 주문을 받았다. 신이 나서 열심히 길렀다. 그런데 갑자기 주문이 취소됐다. 상당한 자금이 들어간 터라 타격이 컸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호주로 떠났다. 2년 동안 남의 땅에 농사 지어주며 살았다.

호주에서 돌아온 그는 제 땅에 제 농산물을 키우고 싶었다. 농가 12곳과 힘을 합쳐 영농조합을 만들었다. 1994년 아산에 대규모 화훼농원을 조성했다. 하지만 이번엔 외환위기가 닥쳤다. 꽃은 사치품으로 전락했다. 매출은 급감했고 조합원들은 떠났다. 경제적으로도 힘들었지만 마음 고생이 더 심했다. 그러다 2002년 망했던 농원 일부를 바꿔 식물원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영농조합을 새로 구성하고 재배지 1만7000평 중 5000평을 식물원으로 리모델링했다.
그게 바로 지금 세계꽃식물원이다. 식물원의 꽃은 영농조합을 비롯해 농가에서 생산한 것들이다. 개관소식이 알려지면서 자신의 식물을 전시해 달라고 가져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5000평의 공간이 석 달만에 식물로 가득찼다.


“관람객이 오면 ‘여기 뭐가 귀한 거예요’라고 물어봅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저희 식물원엔 희귀 식물이 없어요. 다 농민들이 농사짓고 있는 것들이지요. 그래서 다 귀합니다. 저는 설명할 때 이 꽃은 대한민국 농가 누군가가 키우고 있는 거라고 말씀드립니다. 그에 얽힌 스토리를 풀어나갑니다.”(남 원장)

◆꽃을 키우고 싶은 딸, 남슬기 LIAF 대표

남슬기 LIAF 대표는 아버지 남 원장의 꽃 사랑을 그대로 보고 자랐다. 꽃 하나에 평생을 바쳐온 아버지를 존경했지만,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아버지의 고집불통이 답답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2009년 대학을 졸업한 후 식물원 경영에 합류했다. 주변에선 그 스펙에 왜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려 하냐고 물었지만 남 대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식물원을 더 잘 보여주고 싶었다. 아버지의 투박한 열정을 더 멋지게, 더 세련되게. 하지만 영농조합과 식물원의 농부들은 서비스업에 미숙했다. 농사일밖에 몰랐다. 서비스에 초점을 맞춘 영농법인의 자회사를 하나 세우자고 결심하게 됐다. 남 대표가 카이스트 MBA(경영학 석사)를 받은 뒤 설립한 자회사가 LIAF다. ‘Life is a flower’의 앞 글자를 땄다.

남 대표는 왜 꽃이 사회적 이슈가 돼야하는지를 고민해왔다. 꽃은 치료제가 아니다. 다만 영화와 음악처럼 사회에 다양한 색을 입힐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음식이 육체적인 배고픔과 목마름을 해결하듯이 꽃은 정서적 허기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LIAF의 사업은 전시된 꽃을 그저 보는 것을 넘어선다. 가든센터라는 공간을 통해 생활 속에서 꽃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소개한다. 원예 프로그램, 다양한 제품, 식음료 서비스까지. LIAF를 세우면서 식물원도 리모델링했다. 세계꽃식물원과 LIAF는 한 ‘부모’(영농조합)에서 태어났지만 성향은 다른 ‘형제’다. 식물원이 듬직하고 든든한 맏이라면, LIAF는 붙임성 좋고 애교 많은 늦둥이 같다.


그는 아버지에게 ‘우리다움’을 잃지 말자고 한다. 조금은 늦게 가도 괜찮다고 말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요. 너무 조급해하지말고, 우리 색을 잃지 말고, 천천히 가자고 해요. 그동안 쌓아온 식물원의 이야기를 더 멋지게 풀어내되 해왔던 것처럼 그저 뚜벅뚜벅 걸어가자고요.”

◆식물원 안 가든센터의 역할

식물원 방문객 중 일부는 아무 생각 없이 꽃을 따서 주머니에 넣는다. 몰래 캐가는 사람도 있다. 남 원장과 남 대표는 이런 ‘서리’ 행위를 강력하게 막는다. 어떤 이들은 그들에게 “시골 인심이 팍팍하다”고 했다. 하지만 남 대표는 강경했다. “농사는 시간 싸움이에요. 한 송이의 꽃을 피워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농부들의 시간이 들어가는지 모릅니다. 그걸 그렇게 함부로 따면 안 되죠.”

식물원 입장료는 8000원이다. 비싸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남 대표는 식물원에 전시된 꽃의 가치를 낮추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소셜커머스에서 흔한 입장료 할인 같은 것도 하지 않는다. 식물원 가든센터에서 살 수 있는 식물엔 정확한 가격이 붙어 있다. 정찰제다. 꽃이며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바꾸기 위한 시도다. “보통 화분 2000원짜리 5개 사면서 하나 더 덤으로 원하는 경우가 많아요. 농산물이 특히 그렇죠. 하지만 저희는 할인이 없어요. 우리 농산물이 제대로 된 가격으로 정확히 팔리길 바랍니다.”

남 원장 부녀는 앞으로 꽃 문화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다면 한국의 화훼산업은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일상에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꽃을 꿈꾼다. 그 접점이 식물원에도 있는 가든센터라고 본다. 화분이나 식물은 물론이고 상토, 비료, 농기구나 울타리를 쉽게 살 수 있는 곳. 유럽엔 소도시에도 이런 가든센터들이 많이 있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꽃 유통에 뛰어든다면 생산자들이 좀 더 나아질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꽃은 특수성이 있어요. 살아있는 식물이잖아요. 유통을 아무리 잘 안다 하더라도 꽃 자체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면 안 됩니다. 지금 문화센터가 근처에 많이 있듯이 가든센터도 지역마다 랜드마크처럼 생긴다면 꽃을 향한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질 겁니다.”(남 원장)



◆“꽃 한잔 드세요”

정찰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식물원이지만 그동안 꾸준히 나눠온 것도 있다. 다육식물이다. 10년쯤 전부터 식물원 방문객에게 나눠준 게 100만개를 넘었다. 다육식물 키우기 문화를 조성하는 데 일조했다고 믿는다. 어떤 방문객은 집에 텃밭이나 정원이 없어 심을 곳이 마땅치 않다고 했다. 그럴 때면 남기중 원장은 “그러면 평소 잘 다니는 길에 심어놓고 여러 사람이 지나가면서 볼 수 있게 하라”고 권유한다.

“식물원에 온다는 것 자체가 식물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별 관심이 없더라도 다육식물을 집에 가져가서 두고 보면서 식물 키우는 게 재미있는 일이란 걸 알게 됐을 겁니다.”(남 원장) 최근엔 튤립 알뿌리도 나눠줬다. 식물원에서의 시간이 집까지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들은 꽃 문화를 허례허식으로 볼까봐 걱정한다. 대단한 게 아니라 그냥 꽃이다. 최근 꽃꽂이나 가드닝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잘못 향할 경우 오히려 ‘꽃=사치’라는 이미지만 굳힐 수도 있다. 소수의 ‘힙한 문화’로만 비춰지게 되면 안 그래도 허약한 시장이 더 망가질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올림픽 치르기 위해 붐을 일으키는 식의, 혹은 일회성 행사에 쓰이는 식의 꽃으로는 더 이상 안 됩니다. 꽃이란 농산물을 보다 문화적으로 접근했으면 합니다.”(남 원장)

남 대표는 ‘꽃 한잔 드세요!’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커피 한잔처럼 꽃 한송이를 일상에서 사자는 캠페인이다. 카이스트 MBA 때 해봤던 시뮬레이션도 성공적이었다. “커피도 문화가 없었지만 테이크아웃 잔과 상점들이 늘어나면서 자리 잡았죠. 꽃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멋지고 대단한 게 아니라 집에 김치 담는 통에 심어도 되는 게 꽃이거든요.”

남 원장은 아직도 폐타이어나 공사 자재 같은 것을 잘 주워온다. 다 쓰고 난 구근박스와 화분 받침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일상에 친숙한 소재들이 꽃을 더 빛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꽃도 그렇게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아산=FARM 고은이 기자
전문은 ☞ blog.naver.com/nong-up/221095892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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